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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제품

오래된 친구에게 선물하고 싶은 시집 i에게 리뷰

by 3in1 2023. 3. 27.

여러분은 시를 좋아하시나요? 시를 읽고 먹먹해진 경험이 있으신가요?

제목: i에게
저자: 김소연
아침달 시집


시라는 것은 참 오묘하다.
아무것도 모를 때는 너무 짧은 글이라고 무시하다가
조금이라도 머리가 크고 보면 너무 짧은 글이라서 어렵다.
시를 읽을 줄 모르는 나이가 꽤 길었다. 나라는 사람은 올해가 되어서야 시가 조금 읽히는 것 같다. 시다운 시를 이제야 읽을 수 있게 되었다. 특히 나보다 앞선 세대를 살아간 시인들의 시가 유난히 매력적으로 다가온다. 거기에야말로 시의 찐 단맛이 숨어있는 것 같다.

i에게. 제목부터 친근하다. 어여쁜 소녀같은 표지를 지나 한 편 두 편 시를 읽다 보니 이 시인이 대체 누구인가 궁금해졌다. 시인을 알고 나머지 시를 더 읽고 싶었다. ‘처음으로’ 돌아가 봤지만, 전자책 앞쪽에는 저자 소개가 상세히 나와있지 않았다. 그렇다면 맨 뒤다. 추천사라고 해야할지 저자 설명서라고 해야할지 모르겠지만, 지인이 말하는 시인의 이야기가 실려있었다. 몇 년도, 어디어디 출생, 지금까지의 작품 무엇무엇무엇보다 훨씬 더 정감가고 따뜻한 저자 소개였다. 신기하게도 시인과 김소연님과 나의 사이에는 망원동이라는 공통점이 있었다. 비록 살았던 시기와 시대는 달랐지만. 그녀는 홍수를 겪었고, 나는 겪지 않았다는 것이나 망리단길 젠트리피케이션의 한 가운데 서본 것은 그녀가 아닌 나라는 것 정도의 차이가 있었을까. 망원동에서의 삶을 기록해두었어도 참 좋았을텐데 하는 생각이 문득 든다.


시집이라고 하면, 늦은 밤 잠들기 전 읽는 모습이 먼저 떠오른다. 하지만 나는 아침에 이 시집을 읽는 것을 추천한다. 하루를 시작하는 아침 출근길, 지하철 안에서 이 시를 읽으니 그 날 하루 종일 내 눈에 들어오는 풍경이 달리 보였다. 큰 건물 벽 아래에 홀로 서서 담배를 태우고 있는 여인이나, 도로를 달리는 자동차들, 화단에 옹기종기 모여앉은 중역 회사원들의 뒷모습이 하나하나 정지된 화면처럼 내 뇌리에 와서 각인되었다. 마치 나도 김소연 시인처럼 저 장면을 묘사할 수 있을 것만 같았다.


모든 시를 이해할 수는 없었다. 시를 어떻게 읽는지는 아직 잘 모르겠지만, 내게 이해되는 만큼만 읽었다. 전부 이해할 수 없어도 좋았다. 누군가 그랬다. 가장 좋은 책은 끊김없이 술술 읽히는 책이 아니라 읽다가 자꾸 덮게 되는 책이라고. 그리고 다시 펼치게 되는 책이 단연 베스트일 것이다. 그 까닭은 이렇다. 우리는 책을 읽을 때 내용만 이해하고 흡수하는 것이 아니라 그 속에 있는 글을 가지고 스스로 생각해보고 해석해보고 내 생각을 끼워넣어도 보면서 ‘사색해야’ 한다. 그러니까 책을 자꾸 덮는 까닭은 사색하기 위함이어야 한다. 그리고 시집은 내용이 좋든 나쁘든 그렇게 하게 된다. 시 한 편을 읽고 그 감흥을 다 느끼기도 전에 다음 편으로 넘어가버리면 어딘가 허전하다. 한 편을 읽고 고개를 들어 창밖을 보며 머릿 속에 한 번 더 생각해 본다. 그리고 또 다음 편으로 넘어간다. 읽다가 모르겠는 부분은 그냥 넘긴다. 목차를 열어서 제목이 끌리는 시를 찾아 훌쩍 점프를 하기도 한다.


그 사이사이에도 어쩜 이리 내 마음을 시원하게 긁어주는 표현들이 많은지. 밑줄 그은 문장 몇 개를 공유하며 글을 마무리한다.


- 올해는 새해 인사를 고르느라 아무에게도 인사하지 못했다 
복 많이 받으시라는 말을 할 수 없어 벙어리로 지냈다 
(너의 포인세티아 중 일부)

- 얇이 라는 말을 깊이 생각했다 (편향나무 중 일부)

- 배낭을 메고 내가 나를 거듭 떠났다 
나를 배웅하기 위하여 나는 또다시 어딘가로 떠났다 
한 번도 살아본 적 없는 곳으로 가서 (편향나무 중 일부)

- 눕다시피 살아가는 나무들을 보았다 누워버린 나무들은 이미 죽은 나무였다 눕다시피 살아가는 고양이를 보았다 눕고 싶으면 누웠다가 걷고 싶으면 걸었다 누우면 잠이 들고 잠이 깨면 일어나 움직이는 일이 못내 자랑스러워서 나에게 나는 기꺼이 빵과 우유를 주었다 (꿈에서처럼 중 일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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